[기획컬럼 2부] 외래어 수용과 사고의 확장: 우리의 세상은 언어의 크기만큼 넓어진다

출근길, 가방에 챙겨온 보온병의 고무 패킹을 깜빡하는 바람에 물이 흥건히 새버리는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다. 다행히 요즘 나오는 백팩은 기능성 재질이라 금방 마르고, 중요한 문서도 없었기에 그저 ‘오늘 뇌를 너무 열심히 써서 단순 루틴에 잠시 전력이 꺼졌구나’ 하고 가볍게 웃어넘겼다.

운전대를 잡고 도로 위를 보니, 주말 연휴를 보내고 다시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무겁다. 월요일의 영혼 가출한 풍경을 보며 문득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응원의 말, ‘파이팅(Fighting)’이 떠올랐다. 영어권에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100% 콩글리시이자 과거 일본식 영어의 영향을 받은 단어다. 한때 언론과 국어 순화 단체에서는 이 단어가 부끄러운 표현이라며 쓰지 말자고 대대적인 운동을 벌이기도 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삶과 습관에 깊숙이 정착해 전 국민의 에너지를 깨우는 마법의 단어가 된 ‘파이팅’을, 단지 외래어라는 이유로 인위적으로 배척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일상의 단어가 된 ‘빵’ 역시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100% 외래어다. 언어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억지로 검열하고 통제한다고 해서 통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외래어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단어를 습관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은, 인간의 사고력을 확장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1. 언어의 해상도가 곧 사고의 해상도다

인간은 언어를 기반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인간은 자신이 가진 언어의 한계만큼만 세상을 본다.” 새로운 문물이나 개념이 들어왔을 때, 그것이 외래어든 순우리말이든 새로운 어휘를 유연하게 흡수한다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의 화소(픽셀)’를 촘촘하게 만드는 일이다. 모니터의 해상도가 높을수록 화면이 선명해지듯, 어휘의 총량이 늘어날수록 인간의 정신세계와 논리적 사고도 훨씬 정밀해진다.

과거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접했거나, 외국어 학습 앱으로 독일어를 공부해 본 사람들은 한 번쯤 숨이 턱 막히는 ‘정말 긴 단어’들을 마주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독일어는 기존의 명사들을 자석처럼 착착 이어 붙여 세상에 없던 새로운 추상적 개념을 무한대로 만들어내는 독특한 조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타인의 불행을 보며 느끼는 얄궂은 기쁨을 뜻하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나, 시대의 정신을 뜻하는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기술 용어 역시 자동차(Volkswagen: 국민의 차), 수소(Wasserstoff: 물을 만드는 물질)처럼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자신들만의 직관적인 단어를 합성해 뚝딱 만들어낸다.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철학과 정밀 공학 기술이 극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본질적인 비결은, 이처럼 언어가 개념을 정밀하게 딱 붙잡아주고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언어의 확장이 곧 정신적, 지능적 발달로 이어진 셈이다.

2. 섞여 나오는 언어는 잘난 체가 아닌 ‘사고의 방증’이다

가끔 외국에서 오랜 기간 공부를 하거나 생활하다 온 사람들이 한국말을 할 때 은연중에 영어나 현지 단어를 섞어 쓰는 모습을 보곤 한다. 대중 시선에서는 간혹 ‘잘난 체를 한다’며 눈총을 주기도 하지만, 언어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 나라의 환경에서 생존하고 소통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 영어로 생각하는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뇌의 사고 메커니즘 자체가 그 언어 체계로 동기화된다. 한국어로 즉각 치환되지 않는 미묘한 감정이나 뉘앙스의 개념이 먼저 뇌 스크린에 떠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섞여 나오는 것뿐이다. 즉, 언어가 뒤섞이는 현상은 잘난 척이 아니라 그 언어로 치열하게 사고하고 살아왔다는 가장 확실한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방송이나 언론이 트렌드나 시청률을 쫓겠다며 유행하는 줄임말이나 무분별한 신조어를 자막에 남발해 세대 간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언어의 기본 규칙을 파괴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사회의 기준을 잡아줘야 할 공공재로서의 방송은 중심을 지켜야 마땅하다.

하지만 대중의 일상에서 외래어나 새로운 어휘를 맞아들이는 태도만큼은 훨씬 더 유연하고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 언어를 인위적으로 가두고 검열하는 사회는 대중의 사고력 또한 그 틀 안에 갇히게 만든다. 새로운 단어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우리 것으로 소화해 낼 때, 우리의 정신적 지평선도 그만큼 더 넓고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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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사소한 해프닝 속에서도 언어와 인간의 의식 구조를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시선은, 늘 우리 내면의 본질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듭니다. 무의식의 수면 아래 잠겨 있던 생각의 파편들이 하나의 정교한 논리로 엮이듯, 스스로의 세계를 확장해 나갈 진정한 성찰의 순간이 머지않았습니다. 당신의 깊은 사유와 여정을 안내할 밤하늘의 이정표, Starsign16이 곧 새로운 깨달음과 함께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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