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빚어낸 미각의 아이러니: 우연한 생존이 위대한 지혜로 둔갑하기까지

무더운 여름날, 점심으로 배달시켜 먹고 남은 짜장면 양념을 보며 잠시 갈등에 빠진 적이 있으신가요? 냉장고에 넣기엔 아직 온기가 남아 있고, 실온에 두자니 몇 시간 만에 시큼한 냄새가 올라올 것만 같은 찝찝함 말입니다. 결국 아까운 마음을 뒤로한 채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향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사계절 내내 차가운 온도를 유지해 주는 이 거대한 금속 상자, 즉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사람들은 이 덥고 습한 여름을 도대체 어떻게 버텨냈을까요?

여름철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식재료는 수확되는 그 순간부터 부패와의 맹렬한 전쟁을 시작합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국이나 찌개가 남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불 위에 올려 펄펄 끓여둠으로써 균을 죽였고, 차가운 우물물에 음식을 담근 바구니를 매달아 띄우며 자연이 내어준 서늘함을 영리하게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임시방편만으로는 사계절 내내 식량을 안정적으로 곁에 둘 수 없었지요. 그래서 인류가 기나긴 고민 끝에 선택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음식에서 ‘수분을 빼앗고 소금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1. 냉장고 밖의 인류, 살기 위해 수분을 쥐어짜다

부패를 일으키는 미생물은 수분이 없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겨울 내내 매서운 바람 속에서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수분을 완전히 날려버린 황태, 그리고 소금에 푹 절인 뒤 햇볕에 바짝 말린 굴비와 피데기 같은 반건조 해산물들이 바로 그 절박한 생존 투쟁의 결과물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방식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존재했던 고유하고 독창적인 풍습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남유럽에서는 돼지 다리를 소금에 절여 수개월간 건조한 하몽이나 프로슈토를 만들어 단백질을 보충했고, 북유럽의 척박한 해안가에서는 대구를 바닷바람에 바짝 말려 ‘스톡피시(Stockfish)’라는 저장 식량을 만들었습니다. 유목 민족들 역시 이동 중 고기가 썩는 것을 막기 위해 고기를 바짝 말려 육포로 만들어 품에 안고 다녔습니다. 결국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냉장고의 부재’라는 거대한 공통의 한계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을 취했던 셈입니다.

2. 결핍이 우연히 빚어낸 미각의 기적

그런데 이 치열한 생존의 역사 속에는 참으로 묘한 아이러니가 숨어 있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은 그저 음식을 썩히지 않고 며칠이라도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 수분을 쥐어짜 내고 소금을 쳤을 뿐인데, 그 혹독한 건조와 염장의 시간 속에서 뜻밖의 마법이 일어난 것입니다. 생선이나 고기의 수분이 서서히 증발하면서 단백질이 밀도 있게 응축되었고, 그것이 발효와 분해 과정을 거치며 아미노산을 생성해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깊은 감칠맛’과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만들어낸 것이지요.

현대의 우리는 최첨단 냉장 및 냉동 시설 덕분에 언제든 갓 잡아 올린 가장 신선하고 촉촉한 식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꺼이 비싼 값을 치러가며 수분이 바짝 마른 황태를 끓여 내고, 얇게 저민 숙성 하몽을 와인 곁에 올립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만 했던 과거의 결핍과 불편함의 시간이, 냉장 기술이 완벽해진 현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대체할 수 없는 고급스러운 풍미를 지닌 별미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3. 절박한 생존 기록을 위대한 지혜로 둔갑시키는 심리

이 지점에서 우리는 현대인들의 흥미로운 심리적 착시 현상 하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나 미디어를 보면 종종 이러한 전통 가공 방식을 두고 “우리 선조들의 놀라운 과학적 지혜”라거나 “아미노산의 풍미를 극대화하는 선진 가공법을 일찍이 간파한 혜안”이라며 극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척박한 환경 속에서 그런 보관법을 찾아내고 발전시킨 것은 분명 지혜로운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고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본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후손들의 미식 향연을 위해 기획된 고도의 과학적 설계라기보다는 ‘일단 오늘과 내일을 굶어 죽지 않고 버티기 위한’ 인간의 원초적 생존 본능에 훨씬 더 가까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우연히 얻어걸린 생존의 결과물을 후대에 와서 위대한 천재성으로 포장하려 드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것은 현대인들이 과거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덧붙이는 ‘문화적 자부심’의 발로일지도 모릅니다. 가난하고 불편했던 과거의 치열한 기억을 단순히 ‘결핍의 역사’로 놔두기보다는, 선조들의 영명함과 과학적 지혜가 담긴 ‘위대한 유산’으로 아름답게 각색함으로써 현재 우리의 뿌리를 조금 더 자랑스럽고 특별하게 여기고 싶은 무의식적인 심리가 투영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4. 환경이 만든 보편성과 우연의 미학

사실 특정 국가나 민족이 유별나게 뛰어나서 이런 기술을 독점적으로 발명했다기보다는, 그 시절 그 척박하고 습한 환경 속에 던져진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살기 위해 비슷한 고민을 안고 결국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을까요? 최고급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타임머신을 타고 냉장고 없는 시대로 뚝 떨어지게 된다면, 살기 위해 기를 쓰고 생선에 소금을 쳐서 처마 밑에 매달아 두며 스스로 생존의 지혜를 터득해 냈을 것입니다.

과거의 산물을 무조건적으로 미화하고 찬양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인류 보편의 절박함과 그 절박함이 빚어낸 우연의 기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완벽하게 계산된 레시피가 아니라,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려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짠내 나는 땀방울이 시대를 건너 지금 우리 식탁 위의 가장 훌륭한 별미를 완성했다는 사실. 어쩌면 삶의 가장 아름다운 가치들은 종종 치밀한 계획이 아니라 절박한 우연과 결핍 속에서 탄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starsign16
결핍과 우연이 빚어낸 과거의 흔적을 어떤 시선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식탁 위 음식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듯, 우리 내면에 깊게 자리한 무의식과 과거의 경험들 역시 어떤 렌즈를 통해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가치와 무게가 뒤바뀌곤 합니다. 타인의 맹목적인 찬양이나 사회적 통념에 무비판적으로 동화되기보다는, 나만의 고유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해석하며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취향을 세워가는 여정. 그 흥미롭고 깊이 있는 통찰의 길에 starsign16이 든든하고 다정한 나침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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