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낮게 깔린 산안개를 보며 가다 보면, 뇌는 자연스럽게 타임머신을 탄다. 어릴 적 장마 끝자락에 가족들과 떠나던 설악산의 서늘한 공기, 그리고 고속도로 휴게소 처마 밑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먹던 뜨끈한 국수 한 그릇의 냄새 같은 것들.
그런데 최근 문득 내 기억의 저장고를 뒤적이다가 흥미로운 오류 하나를 발견했다. 내 머릿속에는 기차가 대전역에 정차한 짧은 10분 사이, 플랫폼으로 잽싸게 뛰어 내려가 쑥갓과 유부가 툭툭 썰려 들어간 가락국수를 폭풍 흡입했던 아주 선명한 장면이 있다. 에어컨도 없던 그 시절, 후루룩 들이켜던 국물 맛까지 생생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연대표를 따져보면 나는 어릴 때 경상도나 전라도 깊숙이 기차를 타고 갈 일이 거의 없었다. 주로 고속버스를 타고 다녔다. 알고 보니 이 기억은 어릴 적 어머니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려주셨던 ‘대전역 가락국수의 추억’이라는 청각적 정보에, 내가 실제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국수를 먹으며 느꼈던 ‘시각·미각적 경험’이 무의식 속에서 자석처럼 들러붙어 재조합된 ‘기억의 왜곡(False Memory)’이었다.
컴퓨터라면 코드가 꼬인 에러라고 하겠지만, 인간의 무의식은 이처럼 영리하고도 낭만적이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가장 따뜻하고 설레던 시절의 조각들을 모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맛있는 ‘인생 국수’ 한 그릇을 마음속에 재구성해 내니까 말이다.
낭만이 가위질당한 요즘 고속도로 휴게소
이 정겨운 기억의 오류를 더듬다 보면 자연스럽게 요즘 고속도로 휴게소로 시선이 가닿는다. 솔직히 말해, 요즘 휴게소 음식들은 참 맛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재미가 없다’.
과거의 휴게소들은 지금처럼 대기업 푸드코트나 거대한 식자재 유통 시스템이 들어오기 전이었다. 주방 아주머니들이 뒤에서 직접 육수를 우려내고 면을 삶아 툭 말아주던, 투박하지만 손맛이 살아있는 오리지널리티가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의 공기, 가게마다 미세하게 달랐던 국물 맛이 어우러져 음식은 하나의 ‘완벽한 경험’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의 어느 휴게소를 가든 대형 식품 공장에서 깔끔하게 패키징되어 내려온 똑같은 소스, 똑같은 냉동 면을 쓴다. 대량 생산과 효율성, 그리고 상향 평준화라는 편리함을 얻은 대신 그 휴게소만의 영혼과 낭만은 가위질당했다. 마치 키워드만 빽빽하게 채워 넣은 영혼 없는 로봇의 글을 보는 것처럼 무미건조하다.
결국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단순히 혀끝을 자극하는 조미료 맛이 아닐지도 모른다. 계절의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스토리를 먹던 그 시절의 맥락, 그리고 우리의 엉뚱한 무의식이 지켜내고 싶었던 인간미 넘치는 아날로그의 흔적들이다. 편리함이 극에 달한 지금,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그 불편했던 시절의 영혼 있는 국수 한 그릇이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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