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주택가 골목길을 걷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던, 해가 쨍쨍한 날인데도 버드나무 밑을 지나갈 때 무언가 미세하게 툭, 툭 떨어지던 묘한 느낌이 있었다. 손등을 훔쳐보면 약간 끈적하기도 했던 그 정체불명의 액체. 나이가 들고서야 알았다. 그것이 나무에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던 진딧물들이 뿜어내던 배설물, 이른바 ‘감로(Honey dew)’였다는 것을.
지금 기준으로는 “비위생적이다”, “벌레가 꼬인다”라며 당장 구청에 방역 민원을 넣고 나무를 베어내라고 난리를 칠 일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시절의 나무들은 그 수많은 진딧물을 몸에 얹고도 해마다 푸른 잎을 틔워냈고, 골목길은 알아서 굴러갔다. 인간이 굳이 약을 치고 개입하지 않아도 무당벌레가 나타나 진딧물을 잡아먹고, 자연은 스스로 자정작용을 거치며 남을 나무를 남겼다.
인간의 설레발과 오만이 만든 억울한 누명의 대표 주자가 바로 아카시아(아까시나무)다. 한동안 산림청과 미디어에서 소나무를 다 죽이는 전염병 같은 존재로 몰아세우며 아카시아를 전방위로 베어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소나무를 진짜 위협한 것은 아카시아가 아니라 ‘소나무재선충’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이었을 뿐이다. 아카시아는 그저 척박한 땅을 기름지게 가꾸고 조용히 물러나려던 징검다리였을 뿐인데, 인간들은 제 풀에 지레 겁을 먹고 애꿎은 나무를 학살했던 셈이다.
잎사귀 하나로 온종일 행복했던 그 시절의 아날로그
아카시아를 다 없앤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가슴 한구석이 먹먹하고 아쉬웠던 건, 그 나무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내 유년의 가장 찬란했던 놀이터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살았지만 경기도로 넘어가는 끄트머리에 살았던 그 시절 우리는 참 투박하고 정겹게 놀았다. 향긋한 아카시아 흰 꽃을 툭툭 따서 달콤한 밑동을 씹어 먹기도 했고, 나비 날개처럼 마주 난 아카시아 잎줄기를 하나씩 꺾어 들고 친구와 마주 앉았다.
“가위, 바위, 보!”
이기면 잎사귀를 하나씩 손가락으로 튕겨 쳐냈다. 누가 먼저 마지막 잎새까지 다 털어내는지 내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잎을 다 털어내고 남은 앙상한 줄기는 그냥 버리지 않았다. 탄력이 있는 줄기를 살짝 구부려 한쪽 끝은 입에 물고, 다른 양 갈래 끝은 양쪽 눈꺼풀 사이에 절묘하게 끼워 넣었다. 그러면 순식간에 눈이 뒤집힌 엉성하고 장난기 가득한 ‘도깨비’가 완성되었다. 거울이 없어도 서로의 얼굴을 보며 자지러지게 웃어대던, 돈 한 푼 안 들던 우리들만의 천진난만한 축제였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 액정 속 화려한 그래픽을 보며 자라지만, 우리는 초록색 아카시아 잎사귀 하나, 진딧물이 떨어지던 버드나무 그늘 하나만 있어도 온종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효율성과 깔끔함이라는 잣대로 골목길의 나무들을 밀어버린 지금, 우리가 정말로 잃어버린 것은 아카시아 나무가 아니라 잎사귀 하나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했던 그 시절의 순수한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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