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어둠이 짙어진 산등성이를 보다 보면, 문득 우리나라 산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저 나무들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사계절 내내 푸르고 울창해 보이지만, 정작 목재 시장이나 가구 공장에서는 “우리나라 산에는 쓸 만한 나무가 없다”라며 대부분의 목재를 수입에 의존한다. 세월이 이만큼 흘렀는데, 왜 우리 산에는 후세가 목재로 쓸 만한 제대로 된 나무가 드문 걸까?
여기에는 6·25 전쟁 이후 황폐해진 국토를 하루빨리 푸르게 만들어야 했던, 우리 현대사의 치열하고도 급박했던 ‘산림 녹화’의 역설이 숨어 있다.
1. ‘양’을 채우기 위한 속도전과 리기다소나무
전쟁 직후 우리 산은 그야말로 나무 한 그루 없는 붉은 대머리산(황폐지)이었다. 비만 오면 토사가 흘러내려 홍수가 났고, 가뭄이 들면 바로 가뭄 피해로 이어졌다. 이때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목재 자원 육성’이 아니라, ‘지구력 강하고 빨리 자라 땅을 붙잡아줄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즉, 질보다 양을 택한 속도전이었다.
이때 선택된 대표적인 수종이 바로 척박한 땅에서도 악착같이 살아남는 ‘리기다소나무’와 콩과 식물이라 땅을 기름지게 만들어주는 ‘아까시나무’였다. 특히 리기다소나무는 아무 땅에나 심어도 쑥쑥 잘 자라 국토를 푸르게 만드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문제는 이 리기다소나무가 자라기는 빨리 자라는데, 줄기가 곧지 않고 옹이가 너무 많으며 송진이 가득 차서 가구나 건축용 목재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불량 목재’라는 점이다. 결국 땅을 푸르게 만드는 임무는 완벽하게 완수했지만, 미래를 위한 경제적 가치는 남기지 못한 셈이다.
2. 기후와 지형이 만든 천연의 한계
그렇다면 우리 고유의 소나무(적송)나 참나무는 왜 대형 목재로 자라지 못했을까?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척박한 산악 지형과 기후도 한몫했다.
유럽이나 북미의 울창한 침엽수림 지역은 평탄한 대지에 토양이 깊고 비옥해 나무가 수백 년 동안 곧고 길게 뻗으며 자란다. 반면 우리나라는 산의 70%가 바위(화강암) 기반이라 흙층(토심)이 매우 얕다. 나무가 크게 자라려고 해도 뿌리를 깊이 내릴 양분이 부족한 구조다. 게다가 겨울은 춥고 건조하며 여름에만 비가 집중되는 거친 기후 탓에, 나무들이 천천히 자라며 단단해지긴 해도 대형 건축 자재로 쓸 만큼 시원시원하게 굵어지기 어렵다.
3. 2026년 지금, 산의 세대교체가 필요한 이유
나무도 수명이 있다. 70~80년대에 집중적으로 심은 나무들이 이제 나이가 들어 노령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나무가 너무 늙으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능력도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최근 산림청을 중심으로 “이제 푸르게 만드는 단계를 넘어, 진짜 돈이 되고 환경에도 이로운 나무로 바꾸자”라는 ‘수종 갱신(산의 세대교체)’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불량 수종이나 늙은 나무들을 계획적으로 베어내고, 그 자리에 목재 가치가 높고 탄소 흡수력이 뛰어난 편백나무, 낙엽송, 백합나무 같은 ‘경제림’을 채워 넣는 작업이다.
어릴 적 가위바위보를 하던 아까시나무와 산을 푸르게 덮어주던 소나무들이 이제는 미래 세대를 위해 조용히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자연의 자정작용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인간이 저지른 과거의 속도전을 현명하게 AS하는 것 역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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